잊지 않겠습니다.


2010년 새해가 밝았다 [:라이프스토리:]

아무리 잘난 인간도, 못난 인간도 지독하게 공평해지는 것이 시간의 흐름이다. 누구나 하루를 살며, 누구나 한해를 살고, 누구나 한생을 산다. 시간을 헤아리면서 부터, 태초부터 정해진 태양의 주기가 하루 바뀌었을 뿐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시작을 말할 수 있는 것. 지금이 새해다. 최근 몇년동안 새해 아침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유언장을 고쳐 쓰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자각이야말로 인간이 새로 시작되는 삶을 소중하게 각오를 다지게 할터다. 유언장의 형식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해보면, 부족한 것과 버려야 할 것이 눈에 선명해지고, 삶의 달리기는 한결 가벼워질것이다.

새해에 결심한 것 중에 블로그에서 네거티브 글쓰기를 포기하려고 한다. 증오나 분노로 얻을수 있는 것은 증오와 분노뿐이다.

많이 노력해야 할것이다. 남 탓이 아니라 내 탓에 의한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포지티브 글쓰기로의 위대한 전환(?)을 꿈꾸고자 한다. 물론 그 어떤 단호한 각오에도 불구하고 자주 넘어지고 비틀대며 삶(생生)은 계속 쓰여지게 (필筆) 될것이다. 모두에게 가치 있는 한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빈다.

2010.01.01

노명박론에 대한 노무현의 대답 [:시사글:]

히스테리에 대처하기

글쎄. 어지간해서는 이 논쟁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만. 참고자료 하나는 던져주기로 한다. 노무현 정권이 과연 신자유주의 정권이었는가 에 대한 노무현 자신의 답변이다.  2008년 11월 심상정이 노 전 대통령을 공격했고, 민주주의 2.0에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글을 썼다.  아마 그가 계속 발언을 했더라면, 이 논쟁은 종지부를 찍었을지 모르지만 이글 직후에 검찰 조사가 시작되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칩거에 들어갔다.

노무현이 다 옳다고 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최소한 그가 어떤 생각으로 집권했는지,  순진좌파 너희가 단순히 생각하는 대로 노무현은 신자유주의자라는 라벨링으로 그를 단순하게 평가할수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길 권한다. 

다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올린 글 전문이다.

 

심상정 대표의 글 잘 읽었습니다. 저더러 토론에 응하라는 글들도 잘 읽었습니다. 토론에 응하기는 좀 그렇군요. 왜냐하면 제가 토론에 응할 생각이 있다 할지라도 토론 글을 올릴 곳이 마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퍼온 글에 토론 글을 달아서 토론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고요. 그렇다고 심 대표님 홈페이지에 가서 토론 글을 올린다는 것도 좀 우습겠지요? 심 대표님 글은, 얼른 보면 토론을 제안하는 글인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토론을 제안하는 글이 아니지요.

 

토론을 하자고 한 것이라면 저의 글이 실려 있는 이 사이트에 글을 올렸겠지요. 그리고 글 끄트머리에 '언젠가 토론의 기회를 달라'는 취지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심 대표의 글은 단지 저를 비판하는 글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제게 토론에 응하라는 글을 올린 분들은 생각을 좀 덜하셨던 것 아닐까요?

 

제게 토론을 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토론을 회피하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모든 문제에 관한 토론에 응한다는 것은 시간상으로나 능력상으로나 어려운 일입니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모든 토론이 다 가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부득이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쟁점에 한정해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만, 오늘은 심상정 대표의 글에 대한 저의 견해를 좀 쓰겠습니다. 심 대표님은 제게 '정직하고 통 큰 고백', '고해성사', '사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토론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예의에 맞는 일도 아닐 것입니다.

 
심 대표님이 주장하는 논점에 관한 의견입니다. 첫 번째 논지는 핵심을 파악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만, 읽고 또 읽어서 정리해 보니, 결국 '동북아 금융허브론'이나 '한미FTA라는 외부 충격으로 달성하고자 했던 제도의 선진화' 정책이 ‘금융위기의 주범이었음이 확인’된 것으로 진단하고, 제게 ‘제조업을 경시하고, 금융허브를 발전 동력으로 삼고자 했던 무모함과 금융 자유화를 제도 선진화로 잘못 이해한 한미 FTA의 과오’를 인정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요구에 대하여 저는 다음과 같이 되묻고 싶습니다.

 

과연 지금의 금융위기가 한국의 동북아 허브 쟁책, 또는 한미 FTA 때문에 생긴 것이 맞습니까? 지금의 금융위기가 '무분별한 개방'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논지인 듯한데, 그렇다면 그 개방은 언제 적 개방을 말하는 것입니까?

 

지금의 금융위기가 한미 FTA때문에 생긴 것이 맞습니까?

 

동북아 금융허브 정책이나 한미 FTA 정책으로 우리 금융 제도가 얼마나 달라졌고 더 개방된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동북아 금융허브 정책에는 규제 개혁과 개방 과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들 정책의 대부분은 아직 발효가 되지 않은 상태에 있고, 이번의 금융위기와는 관련이 없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한미FTA 안에는 금융 규제의 완화나 개방에 관한 조항이 있다 없다 의견이 갈리고 있습니다만, 그 어느 것도 아직 발효되지 않았고, 역시 이번 금융위기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들입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비판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직접의 논점은 아니지만, 제가 '제조업을 경시'한 일은 없다는 점도 밝혀 두고 싶습니다. 지금의 금융위기가 금융 허브 전략이나 한미 FTA와 직접 관련이 없다 할지라도 개방과 FTA 전반에 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니 여기에 대해서도 의견을 말해야겠지요.

 

심 대표의 글을 읽어보면, '개방 일반'을 문제 삼는 것인지, '무분별한 개방'만 문제 삼는 것인지 얼른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개방 일반을 문제 삼는 것이라면, 저는 '과연 우리가 개방을 안 할 수도 있는 것인가?' 이렇게 묻고 싶고, 무분별한 개방을 문제 삼는다면 '어떤 개방이 분별 있는 개방인가?'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우선 개방 일반에 관하여 생각해 봅시다. 세계에서 그런대로 산다고 하는 나라치고 개방 안한 나라가 어떤 나라가 있는가요? 제가 알기로는 개방을 한 나라들 중에는 잘사는 나라도 있고 못사는 나라도 있지만, 개방을 안 한 나라 중에는 잘 사는 나라가 없습니다.

 

결국 개방은 세계적인 대세입니다. 문제는 그 나라의 경제 수준과 체질에 맞는 개방인가? 무분별한 개방인가? 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래서 심 대표도 ‘무분별한 개방’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다시 의문이 생깁니다. 심 대표가 생각하는 분별 있는 개방은 어떤 개방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 동안 한국은 많은 분야에서 개방을 했습니다.  지난날 우리는 그 모든 개방을 반대했습니다. 반대의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우리 시장을 다국적 기업에게 모두 내 줄 것이라는 것이고, 하나는 개방으로 인한 우리 국내의 산업 구조 조정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과를 보면 우리 시장을 외국 기업에게 다 내 주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기업들이 잘 버티어 준 것입니다. 이 점에서는 무분별한 개방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국내 산업의 구조 조정으로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이 많이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농업과 재래시장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러나 과연 개방을 하지 않으면 이런 구조조정은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요? 농민들과 재래시장은 옛날 방식으로 계속 잘 살 수 있는 것일까요? 과연 그렇게 해서 우리 경제가 세계의 경쟁 속에서 살아 갈 수가 있을까요?

 

더욱이 우리 경제는 수출을 빼고는 성장을 생각할 수 없는 경제입니다. 우리시장만 문을 닫아걸어 놓자고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개방은 마냥 늦추자고 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요? 결국은 정부가 구조 조정에 따르는 피해를 지원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밖에 없는 일일 것입니다.

 

심 대표가 반대했던 한-칠레 FTA 때문에 우리 농업이 몰락했나요?

 

FTA는 개방의 한 가지입니다. 심 대표는 한 칠레 FTA를 반대했습니다. 우리 농업의 많은 부분이 몰락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한 싱가포르, 한 아세안 FTA를 체결했고, 한 EU, 한 카나다, FTA는 헙상 중입니다. 중국과의 FTA도 거론하고 있습니다. 세계를 보면, 중국과 인도 같은 나라들도 FTA를 합니다. 세계에서 FTA를 안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들인가요? 어떤 FTA가 분별 있는 FTA이고 어떤 FTA가 무분별한 FTA입니까?

 

심 대표는 무분별한 개방, 미국식 FTA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얼른 보면 모든 개방, 모든 FTA를 반대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반론을 곤란하게 하기 위하여 일부러 얼버무린 것일까요?

 

심 대표의 두 번째 논점은 자동차에 관한 것입니다. 심 대표는 미국은 FTA 재협상이 아니라 자동차 협상을 요구할 것이고, 이명박 정부는 FTA에 집착하여 자동차 시장을 내 줄 것이고, 그러면 우리 자동차 산업은 궤멸할 것이라는 논지를 전제로, 저에게 한미 FTA 폐기에 나서라고 합니다.

 

정말 그렇게 해야 될까요? 미국이 어떤 요구를 할지,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는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 아직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저 먼서 한미 FTA를 폐기하자고 깃발을 들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정말 한국이 가지고 있는 자동차 장벽이 낮아지면 미국산 자동차가 한국 시장을 석권하게 될 것이라는 심 대표의 가정은 사실일까요? 과연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우리 시장에서 미국 차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상황이 될까요? 그래서 보호주의로 국내시장이라도 지키자는 것인가요?

 

심 대표의 말대로 '가장 넓은 고용 기반을 가지고 있는 우리 자동차 산업'이 국내 시장에서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렇게 하면 고용 기반이 유지 되는 것일까요?

 

이런 문제들은 우리 자동차 산업, 부품산업의 내수시장과 세계시장의 규모와 경쟁력의 요소들을 면밀하게 비교해 보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자동차는 해외 시장에서도 국내 시장에서도 보호정책이 아니라 가격과 기술력으로 경쟁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심 대표가 우리 자동차 산업의 문제를 너무 침소봉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앞으로 우리가 보호 정책으로 대응해야 할 분야가 있다면 그것은 자동차 산업 분야가 아니라 다른 분야일 것입니다.

 

본론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심 대표의 글 중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한 미 FTA에 대한 미국의 비준을 끌어내기 위하여 쇠고기를 양보한 것이라고 말한 대목이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논점에 관한 의견입니다. 심 대표는 '나프타식, 미국식 FTA가 신자유주의의 전형이라는 것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이야기'라고 주장하고, 결국 제가 미국과 FTA를 했으니 신자유주의자라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많이 쓰는 사람들은 작은 정부, 감세와 복지의 축소, 민영화, 규제 철폐, 노동의 유연화, 개방을 주장하는 사상을 일컬어 신자유주의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노동의 유연화, 개방은 규제 철폐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심 대표는 '미국식 FTA'를 '신자유주의의 전형'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대로 하면 미국식 FTA가 아닌 일반적인 개방이나 다른 FTA는 신자유주의가 아니라는 뜻인 것 같기도 하고, '미국식 FTA'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이고, 다른 것들은 그냥 신자유주의라는 뜻인 것 같기도 하여 좀 헷갈립니다만,

 

어떻거나 미국식 FTA이든, 그냥 FTA이든, 개방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므로 '개방'이 신자유주의 사상의 핵심 요소라면 FTA를 추진하는 것은 그 하나만으로도 신자유주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핵심 사상이 따로 있고, 개방은 그 내용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라면 FTA나 개방을 추진한다 하여 그 하나 만으로 바로 신자유주의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개방' 아닌 '작은 정부'

 

그러면 과연 '개방'이 신자유주의의 핵심 요소일까요? 신자유주의는 공급주의 경제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이론으로, 케인즈 주의와 대비되는 사상입니다. 이 두 사상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시장에 대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것입니다. 케인즈 주의는 '시장은 불완전하므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공급주의 이론은 '정부가 문제이므로 정부는 시장에서 손을 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를 한마디로 말하면, '작은 정부'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세, 복지의 축소, 민영화, 규제 철폐, 노동의 유연화, 개방, 등 모든 교리는 ‘작은 정부’라는 사상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느 주장이나 정책이 신자유주의 교리의 일부를 수용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전체적으로 보아 작은 정부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닐 경우에는 이를 신자유주의로 규정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정부가 개방에 적극적이라고 해서 그 한 가지를 가지고 그 정부를 바로 신자유주의 정부라고 규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럽의 여러나라들도 대부분 개방을 하고, FTA를 하고 있으므로 이들 나라 정부 모두를 신자유주의 정부라고 말해야 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부자를 위한 정책, 시장의 강자를 위한 정책입니다.

 

김대중 정부는 노동의 유연화를 기존의 판례의 범위에서 받아 들였습니다. 일부 민영화를 추진했고, 개방과 한 칠레 FTA를 추진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민영화는 중단했고, 나머지는 계승하고, 한미 FTA를 추진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일부 감세를 받아 들였으나 이것은 대세에 밀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밖에는 전반적으로는 복지제도를 정비하고, 지출을 늘리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부의 역할을 확대했습니다. 국내 총생산 대비 복지 지출과 재정에 의한 재분배 효과도 확대되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부동한 투기 억제 정책과 균형발전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했습니다. 그리고 비전 2030도 내 놓았습니다.

 

정말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가 작은 정부를 지향한 것일까요? 과연 그 정부들이 부자의 정부, 강자의 정부였을까요?

 

노력은 했으나 경제적 사회적 약자를 위하여 심 대표가 주장한 만큼의 진보를 이루어 내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게 생각합니다. 왜 그 정도밖에 가지 못한 것인지는 심 대표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심 대표, 민주주의2.0에서 토론합시다

 

심 대표가 이 나라의 주류 정치세력이 되지 못한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든 저는 좀 더 유능하지 못했던 점에 관하여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 대표는 제가 '토론을 거부'하는 것은 전임 정권의 책임자가 가진 역사적 임무를 다하는 일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소제목을 보면, 전임 대통령답지 않다는 표현까지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일반적으로 전임 대통령이 재임 기간 중에 있었던 일에 관하여 질문이나 토론의 제안이 있다하여 일일이 응답을 하는 것이 가능한 일도 적절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래야 역사적 임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만일 심 대표가 그 동안 민주주의 2.0에서 저에게 질문을 하거나 토론을 제안한 글들을 읽어 보았다면 그런 주장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중에는 진정으로 의문이 있어서 질문을 한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심 대표의 이 글처럼 비판이나 시비를 위하여 질문을 하거나 토론을 제안하는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용이 불명확하거나 시비조인 글들도 많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쓰는데 꼭 이틀이 걸렸습니다. 재주도 부족하고 틈틈이 글을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감당하기 벅차다는 저의 말이 결코 변명이나 회피만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심 대표는 글 마지막에서 머지않은 기회에 토론의 기회를 달라고 합니다. 제가 민주주의 2.0에 올린 글을 보고 토론을 제안했으니 이곳에 와서 이 글에 이어서 토론을 하면 안 될까요?

 

저는 심 대표의 글을 읽다가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에 노 전대통령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라는 대목을 발견하고 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동안 심 대표님은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나. 노무현이나 이명박이나 다 똑 같은 사람들이라고 말해 왔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중도 진보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좋지 않았지요. 그런데 오늘은 저를 이명박 대통령과 구별하여 말해주니 고맙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과연 앞으로도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제가 혼란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파나소닉 HMC-150AN 리뷰 [:비디오:]


* 이 리뷰에 사용한 HMC-150은 파나소닉 코리아에서 제공한 것이다.


< 파나소닉의 HMC-150 AN>

파나소닉의 HMC 150을 일주일가량 사용해 보았다. P2HD를 사용하는 HVX-200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으나, 오래 사용해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과연 최신종인 HMC-150이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해서도 무척 관심이 있었다.  테입리스 장비라면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질, 메모리, 인터페이스, 촬영, 편집(워크플로우)의 장점 위주로 리뷰하기로 한다.

1) 메모리 : 향상된 메모리 스펙

우선 HMC-150도 테입리스 카메라로 SDHC/SD 메모리를 사용할수 있다는 점이 매우 매력적이다.HVX-200의 P2HD의 경우 PCMCIA 슬롯을 사용했는데, 최초 시장에 제시된 컨셉으로는 P2HD가 대단히 혁신적이며 튼튼하다는 점에서는 안정적이였을지는 모르지만, 최근 나오는 노트북의 슬롯들이 Sony PMW EX-1이 지원하는 것과 같은 PCMCIA Express 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P2HD가 매우 어정쩡한 메모리 스펙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HMC-150은 SD 메모리를 채택함으로써, 보다 범용적인 메모리 포맷의 사용이 가능해졌다. HMC-150 본체와 PC 간 다이렉트 연결 테스트 이외에 메모리만 꺼내서 올인원 카드리더기에 넣고 인식시켜도 당연히 잡혔다. 비용과 운영 면에서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SD 메모리 카드는 FAT 12/16, 을 SDHD 카드는 FAT32 을 인식. 테스트용으로 제공된 것은 트래센드의 16GB)

2) 인터페이스 : HVX 200 보다 개선된 HMC-150의 버튼 인터페이스

내가 소니 카메라를 주로 사용을 해와서 (VX2000, PD150, PD170, V1n, Z7n) 그런면도 있을것이다.  파나소닉 카메라 조작부의 인터페이스는 낯설기도 했지만, HVX-200의 인터페이스 버튼들이 잘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특히 HVX-200의 플레이 인터페이스가 손잡이 아래에 배치된 것은 직관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삼각대에 설치하고 난 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면서 조작하려고 하면 손잡이에 가려지기 때문에 몸을 돌려서 사용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 그런데 HMC-150의 플레이 인터페이스는 레버를 채택하면서 좌측 뷰파인더 옆부분으로 이동해왔다. 또 배터리 위에 있던 볼륨 채널, 메뉴도 좌측으로 잘 정리되어 배치되었다.

<HVX -200의 후면 버튼 인터페이스>


<HMC-150의 레버 / 플레이 버튼>
<HMC-150의 버튼 인터페이스>

확실히 HVX-200 보다는 개선된 인터페이스로 진화했다고 생각된다. 특히 180도로 회전하는 lCD 모니터에 디스플레이 셋업에서 Self Shot > Mirror를 선택하면 좌우 반전도 이루어져서 셀프카메라 제작도 용이한 점이 재미있었다. User 버튼에는 11가지 기능 중 하나를 세팅하여 사용할수 있는데, 스폿라이트, 블랙라이트, 화이트페더, ATW, ATW Lock, Gain. D.zom, Index, Shot Mark, Last CLIP 삭제 등의 기능을 가능하고 출하시 세팅되어 있는 디포트값은 Whitefade, Backlight, Index 다.

3) 촬영 : 편리하고 뛰어난 HD 영상제작

테입리스 장비의 탁월한 특성이라고 해야겠지만, 1.7KG으로 매우 가볍고, 그립감도 좋은 편이다. Z7n의 어쩔수 없는 묵직함을 생각하고 처음 들어보고 그 가벼움에 감탄했다. 특히 디지털줌의 경우 노이즈가 심하긴 하지만 10X까지 확대되는 것이 매우 매력적이다.

파나소닉 카메라에 대해서 내가 가자고 있는 편견중에 하나는 소니 카메라 보다 렌즈가 좀 어둡지 않은가 하는 것이였다. 그래서 일부러 어두운 콘서트 장에서의 촬영 테스트를 실시했는데, 생각보다는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


<HMC-150 / 1080 24p 테스트 촬영>

다만, 줌인시의 오토 포커싱 타이밍이 속도가 생각보다 느린데, 이부분은 매뉴얼 모드에 익숙해져서 처리하는 수밖에 없겠다. OSI도 생각보다 잘 적용되어서, 흔를림을 많이 줄일수 있었다. 참고로 라스트 클립의 경우 사전에 지정된 USER 키로 즉시 삭제가 가능하나 촬영중 PB 모드로 전환되거나 전원이 새로 온 오프 되거나, 메모리 카드가 리인스톨 된 후에는 USER 키로 삭제할수가 없다. 

셔터 스피드는 셔터버튼으로 조정할 수 있는데, 60I, 30P, 24P가 각가 다른 값으로 적용된다. 가장 표준적인 1080 24p, (720/24P)의 경우 1/24 <-> 1/60 <-> 1/120 <-> 1/250 <-> 1/500 <-> 1/1000  <-> syncro scan  <-> 1/24 가 된다.

소니의 PP 처럼 다양한 촬영환경을 정해놓고 즉시 변환해서 사용할 수 있는 Scene file 기능은  다이얼로 조정이 가능한데,

F1 : Scene - 일반적 촬영 모드
F2 : Scene Fluo - 3200K 실내 촬영 (형광등 조명) 모드
F3 : Scene Spark : 콘트라스, 해상도, 색상의 변화가 크게 일어나는 촬영 모드
F4 : Scene B-STA - 일몰처럼 어두운 부분의 콘트라스 촬영을 확대하는 촬영모드
F5 : Scene Cine V -  영화 같은 촬영모드
F6 : Scene Cine D -  다이나믹 레이지를 강조하는 촬영모드 

추가로 4개의 장면파일을 메모리에 별도로 세이브/로드해서 나만의 촬영모드의 빠른 세팅이 가능하다.

4) 편집 : 워크플로우의 호환성

USB 케이블을 통해서 편집용 PC와 연결할 수 있다. 또한 HDMI를 지원하게 때문에 TV를 모니터로 활용할 수도 있다. 함께 제공된  Edius Neo 2 번들로 테스트 해볼까 하다가  메뉴얼을 읽어보았더니 Edius Neo 2에서 다시 변환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잠깐 생각하다가 베가스 9으로 파일을 불러봤더니, 아무 이상없이 로딩되었다. 프리미어 CS4 등 최근의 NLE에서는 어지간한 기종의 HD 포맷들은 다 지원하므로, 카메라 때문에 손에 익은 편집 프로그램을 바꾸거나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워크플로우 상에서 편집 세팅을 잘 해두어야 하는 문제는 프로그램 쪽에서 주의를 기해야할 점이다.

디렉토리 폴더 구조는 다음과 같다.

1) 드라이브 : \
    2) PRIVATE
       3) AVCHD
          4) AVDHDTN
          4) BDMV
             5) CLIPINE
             5) PLAYLIST
             5) STREAM <- MTS 파일

물론 테입리스 워크플로우를 경험하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Private 이하 모든 디렉토리 폴더를 동일하게 카피해서 작업하시는 것이 최선이다.

맺으며.....

HMC-150은 HVX-200으로  테입리스라는 시대의 조류에 선명한 화두를 던진 파나소닉이 이후의 영상시대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를 보여주는 뛰어난 성능의 카메라다. 개인적으로 파나소닉 장비에 가지고 있던 편견이 많이 일소가 되었다. 무엇보다 좋은 가격 (500만원 대)으로 높은  퀄리티의 작업이 가능해 HD 영상 작업을 해야하는 분들에게 HMC-150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 될것이다.

스윙보우트 - 아래로 부터의 연대 (1) [:시사글:]

<비판적 지지론>에 대해서 많은 진보정당의 당원/지지자들이 고통스러워한다. 선거 때만 되면, 중도보수가 <비판적 지지>를 내세워서 자신들의 표를 빼앗아 간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건 환상이다. 평소에 진보정당을 지지한다고 하던 유권자가 한평생을 함께하기로 맹세한 봉건시대의 신부도 아니고, 진보정당과 노예 계약을 맺은 연예인도 아니다.

만약 누군가 평소에 (여론조사 때) 날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결정적인 순간(투표)엔 다른 사람을 선택한다면-
그는 사실 날 사랑하지 않았던 거다.
평소에 뭐라고 다정하게 속삭였던지, 그(그녀)는 널 사랑하지 않은거다.
날 사랑한다고 실컷 이야기 해놓고 섹스(투표)는 항상 다른 사람하고만 한다는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혹 뭔가 해주겠다고 사기치고 데려가서 그걸 안해줬기 때문에 사기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건 배신당했다고 주장하는 쪽에서의 뷰이기 때문에 내 눈에만 안 보일뿐, 실제로는 그렇게 지지해서 얻은 혜택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이동한 표심은 다음에도 번번히 그 요구에 응할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은가? 
배신당한 입장에서는 비극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자 할지 모르지만, 한번도 아니고 이런 일이 번번히 벌어진다면, 
뭔가 잘못되었다. 분명히 잘못되었다.

혹시 이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가? 진보적 성향이라고 말해왔던 유권자는 언제든지 배신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때 마침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방식으로 변명할 수 있는 "비판적 지지"라는 명분이 생기자, 이에 호응하고 나중에 화를 내는 진보정당에는 <비판적 지지>때문에 그런거야.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야. 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 말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혹시
배신(?) 하라고 유혹한 인간(중도보수)도, 배신한 인간(유권자)의 잘못도 아니고
과연 그것이  <비판적 지지>라는 지극히 단순한 불륜극의 프레임으로 지금 우리 정치를 보는 일부들의 심각한 오류는 아닐까?

1. 스윙보우트(swing vote) 시대

우리는 여기 한 사람의 유권자를 상상해 보자. 그는 고향이 전라도다. 광주 사태는 어른들의 대화로 간접체험했다. 그는 가장 친한 고향의 친구들과 이야기 할때 전라도 사투리를 쓰며, 고향 사람들이 어쨌든 잘되기를 바란다. 그의 성장배경상 정치적 성향은 민주당이다. 대학교 때 그는 서울로 진학했다. 서울의 삶은 그의 사투리를 점점 잊게 만들었다. 어떻게 운이 좋아 직장을 잡았고, 결혼도 했고 수도권에 은행 빚을 얻어 집도 샀다. 주민등록상의 거주지는 경기도지만 그의 주 생활은 서울에서 벌어진다. 출퇴근 하기 위해 하루에 50Km 이상 이동하기에, 자신이 경기도 사람이라는 지역 커뮤니티의 소속감은 거의 없다.  직장에서 만나는 주요 고객 중에도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고, 직장내에서 생존하기 위해 그가 서야하는 파벌의 성향도 어쩌다 보니 보수적이여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점점 보수 성향의 말들이 다 틀린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빚을 끼고 있을 지언정 그도 집주인이다. 집값이 떨어지면 큰일이다. 그의 생활기반의 정치적 성향은 한나라당이다. 그는 자식이 있다. 그런데 아이가 심한 아토피가 있다. 집에서 신경을 쓴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낡은 학교건물이 문제인것 같다.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야 할까 고민한적도 있다. 교육이 날이 갈수록 사교육 집중으로 가는 건 도저히 자신이 아이들에게 해줄수가 없기에 평등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인생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인 아내는 결혼 적 시민사회단체의 일을 한적도 있어서 이런 걱정을 서로 이야기를 할때는 가끔 진보정당의 교육정책이 나올 때도 있다. 물론 그게 가능할까 하는 회의적인 판단은 현실주의자인 그에게 항상 따르지만 말이다.  그와 그의 가족들의 교육상 추구하는 정치적 성향은 진보정당이다. 

지금 든 예는 하나의 가상적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정치적으로 복잡한 판단이 필요하는 그가  어떻게 투표할지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생각하기 복잡해서 투표를 포기하거나,
후보투표지와 정당투표지를 섞어서 찍음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불균형에 균형을 맞출것이다. 그의 복잡한 정치적 성향을 모두 반영하기에는 투표용지가 너무 적은 것일지 모른다.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진보정당을 집값은 한나라당을, 고향의 발전을 위해서 민주당을 찍을수 있다면, 그는 기꺼히 그렇게 할 것이다.

이것은 무리한 묘사가 아니다. 근세 이전 이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인간이나, 혹은 정당이 국가를 지배하는 구조가 형성되는 과잉된 시기의 인간에게 위 문장을 읽어준다면, 어떻게 인간이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와 다른 정치적 성향을 단일하게 가질수 있으며, 어떻게 인간이 자기 계급에 충실한 정당선택을 하지 않을수 있느냐고 의아해할지 모른다.

그러나 스윙 보우트는 현대의 정치적 인간의 본질이다.  이걸 이제와 바꿀수는 없다. 때로는 분노투표나, 폭주투표같은 감정적인 투표가 이루어지지도 모른다. (2004년 총선 같은) 그러나 기본은 스윙 보우트다. 우리 모두는 다양한 삶의 층위를 살아가고 있으며, 삶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정치적 선택을 위한 중요한 기준들을 매일 조금씩 수정하고 쌓아간다.

유권자의 본질은 배신자다.

그래서 공정한 미디어의 역할은 참으로 크다. 그러나 미디어 탓을 하기 전에 현대의 유권자들이 정당에 투표를 하는 행위가 오직 하나의 이유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착각을 빨리 버리는 것이 좋다. 하지만 여기서 진보정당의 비극이 시작된다. 초기 좌파는 교육으로 인간을 완전 개조할수 있다고 믿었다. 교조적인 초기 공산주의가 소멸한 이후에도 '당원 교육을 집중 강화함으로써 당의 순수성을 확보하고 당세가 확장될 수 있다는' 환상은 좌파 정당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교육과 선전은 물론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역설적인 문제가 생긴다. 교육과 선전을 강화하면 할수록 당이 스윙 보우트에 취약해진다. 

국민 전원이 당원이면서도 국가의 식량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나라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 국가의 이름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다. 정치과잉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우리가 8년동안 (87년 체제가 계속 유지된다는 전제하에서) 목격하게 될 진실은 이렇다.

1) 현대의 한국인들은 본질적으로 스윙보우트(swing vote) 성향을 지닐수 밖에 없으며, 미래에도 인간의 삶이 다원화 되면 될수록 이 성향은 더욱 더 강해질 것이다. 
2) 강력한 당내 교육으로 당원을 단속하고 당외 선전으로 반대당과의 차별성을 일방적으로 부각하는 전략은 좌절하게 될것이다. 현대인의 근본적인 스윙보우트 성향을 바꾸려는 멍청한 노력은 100% 실패한다. (연재글에 후술하겠지만) 이런 노력을 하면 할수록 당의 지지세는 떨어지게 된다.
3) 2017년 미래의 집권 정당은 스윙 보우트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적극 대처하는 정당 또는 연대세력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정당은 스윙보우트(swing vote) 현상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계속)


[본격연대매뉴얼 : 목차]

5. [본격연대매뉴얼] 이글루스 블로거들의 연대 여론을 확인해보자
4. [본격연대매뉴얼] 진보신당의 행운을 빈다
3. [본격연대매뉴얼] 무당파 여러분들께 드리는 편지 (1)
2. 88만원 세대가 사회적 대타협에 기대해서는 안되는 이유
1. [본격연대매뉴얼] 연대하지 않으면 우린 다 죽는다는 말에 대하여

왜 진보신당 지지자들은 유시민을 지지하는가? [:시사글:]

한국 우파가 좌파에 훈계를 그만두어야 하는 이유

싸우려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야 자기정체성에 부합하는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하는데, 일단 참고해서 봐주시길 바란다.
첨부한 이미지는 최근 리얼미터의 차기대선후보지자 여론조사 결과다.
리얼미터 / 여론조사 2009년 11월 20일 : http://www.realmeter.net/

진보신당 지지자 중 유시민 지지율이 44.4%다. 최근 몇달 동안의 리얼미터 조사에 진보신당의 정치인이 올라온적이 없다. 그래서 기타 / 무응답자들이 모두 진보신당의 정치인을 지지한다 간주해도 37.5%다. 

굉장히 이상한 일이다. 

진보신당의 지지자들은 자당의 정치인 보다 다른당 당원인 유시민을 더 지지하고 있다. (진보신당의 정치인은 명단에 없어서 기타와 무응답을 모두 진보신당의 정치인이라고 쳐도 그렇다) 사실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응답자수가 워낙 적을 것이기 때문에 이 수치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몇달치를 쭉 놓고 보면 진보신당 당원들의 대권후보 유시민 지지는 확고하며 뚜렷한 추세다.

[진보신당 지지자의 유시민 지지율 추세]

2009년 11월 13일 : 유시민 지지율 (70.9%) / 진보신당 정치인으로 추정되는 기타 무응답 (1.5%)
2009년 11월 06일 : 유시민 지지율 (51.6%) / 진보신당 정치인으로 추정되는 기타 무응답 (22.2%)
2009년 10월 30일 : 유시민 지지율 (70.5%) / 진보신당 정치인으로 추정되는 기타 무응답 (17.1%)
2009년 10월 28일 : 유시민 지지율 (71.4%) / 진보신당 정치인으로 추정되는 기타 무응답 (12.6%)
2009년 10월 14일 : 유시민 지지율 (84.0%) / 진보신당 정치인으로 추정되는 기타 무응답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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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8월 25일 : 유시민 지지율 (31.7%) / 진보신당 정치인으로 추정되는 기타 무응답 (44.8%)


유시민이 처음으로 대선후보군에 들어간 6월 3일 이후, 진보신당 지지자들이 유시민 보다 기타 무응답을 더 높게 답변한 조사결과는 8월 25일 뿐이다. 그외에는 모두 유시민이 더 높다. 최근 조사는 유시민이 국민참여당에 입당한 이후인데도 높다.

이해하기 힘든 사실 아닌가? 글쓴이의 주장대로라면 아주 많은 진보신당 지지자들은 유시민이라면 불구대천지 원수로 여겨야 하는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내 의문은 이것이다.
왜 진보신당 지지자들은 다른 당 당원을 대통령으로 지지하고 있는가?
참으로 이상한 이 현상에 대해서 도저히 원인파악이 안된다.
그러니 진보신당 당원/지지자 여러분들이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확인해주시기 바란다.
연대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유시민을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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