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5일
박정희는 혈서를 썼다
몇달전에, 박정희考...진충보국 혈서설 떡밥은 여전히 유효한가? 라는 글이 올라온적 있었다.
무명씨의 요지는 "박정희 나이로 충분히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혈서로 지원했다는 것은 거짓" 이라는 것. 특히 혈서론이 퍼지게 된 배경은 박정희의 지인이였던 유증선이 증언을 하고 이 증언을 조갑제가 내무덤에 침을 뱉어라에 인용하면서 퍼지게 된 것인데, 이에 대해 유증선이 소설을 쓰고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런데 최근 친일인명사전 발간의 건으로 박지만이 소송을 걸었고 이에 대해 민족문제 연구소가 사료 (1939년 3월 13일자 만주일보) 를 공개했다. 원문보기 >>>
공개된 사료에 따르면 무명씨의 주장과는 달리 혈서를 쓰고 나이를 조작하라고 조언한 유증선의 증언은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혈서(血書) 군관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넣은 서류로 송부되어 계원(係員)을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하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반드시 국군(만주국군-편집자 주)에 채용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중략)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 : 편집자 주)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만주신문』 1939.3.31. 7면)
이로써 우리가 알 수있는 역사적 진실은
1) 39년 당시 박정희는 분명히 혈서를 썼다. 만주신문은 수십년뒤 한국에서 친일문제가 불거질 거라는 예상 따위는 못했을테니, 당시의 친일풍조를 붐업하기 위하여 모집요강에도 못드는 고령임에도 혈서까지 쓰는 지원자가 있다는 훈훈한(?) 미담으로 보도한 것이다. 그러니 조작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
2) 그러나 나이 문제 때문에 군관이 되지 못했다. 또한 떨어진 이유를 설명하면서 군적이 있는자로 한정되어 있기에 라는 신문기사 내용은 당시 박정희도 사범대 졸은 곧 하사관 지위와 동등하다는 통념에 따라 나이가 안되면 자신이 하사관 군적이 있다고 어필할 목적으로 교련검정합격 서류를 낸것 같다. 하지만 무명씨의 주장과는 달리 당시 전문직 군인들에게 박정희의 어설픈 하사관 군적은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 또 한가지 박정희는 일계군관 모집 요강을 보고 했다고 하는데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으나, 당시 신경군관학교에서 '만주계 군관'과 '일계 군관'을 별도로 모집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또한 박정희가 애초 부터 반도출신자이나 충성심이 강하다고 판단된 만주군에 지망한 일계 군관의 시범 케이스로 입학했기에 졸업시에도 우수자로 선정되고 일본육사에 진학하도록 처음부터 관리된 것이 아닌가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고령에 군적도 없는 식민지 출신자라도 혈서같은 수단으로 충성심 보여주면 성공할수 있다는 제국주의 프로파간다의 완성)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박정희가 만주군 출신이므로, 일본군과는 무관하다는 옹호 주장도 굉장히 옹색해진다. 이하 만주국과 조국(일본)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내용으로 봐서 박정희의 뇌리에는 만주국 = 일본제국 동일체라는 인식이 확고했던 것으로 보인다.
3) 박정희가 혈서를 썼다는 사실은 만주일보에 보도되었다. 즉 만주의 일본인 오피니언 층들에게는 상당한 이슈가 되었다.
* 이후 박정희의 군관학교 입학에 간도특설대 출신의 동향 선배가 개입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반박정희 성향이 강한 중국쪽 사료는 무시하더라도 국내에서 박정희의 동년배 지인 (군인)들 중에서 박정희가 '간도특설대'나 '칠석부대' 소속이었다는 증언이 있는 것에 대해서도 세부적인 검토와 조사는 이루어져야 할것이다.
4) 다음해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 전해에 나이와 군적이 인정이 안되어서 떨어진 자가 다음 해에 특혜로 입학하게 된다면 그것은 혈서로 인한 인상(일제에 대한 충성맹세) 때문일 수 밖에 없다.

무명씨는 지난번 글에서 박정희 혈서론을 지지하는 네티즌들에 대해 "뇌의 촉수가 1볼트 정도의 용량을 가진 뭇 네티즌들이 감화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색이 무엇이던, 엄연한 사료에 대해 곡학아세하지 않는 것이
역사를 논하는 자의 기본자세다.
자 이제 누구 뇌의 촉수가 1 볼트의 용량인지,
무명씨가 자신의 명백한 잘못에 대해 스스로 사과할 수 있는 인격적인 도량이 있는 자인지
확인해 보기로 하자.
# by | 2009/11/05 15:08 | [:시사글:] | 트랙백(2) | 핑백(1) | 덧글(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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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 연구소에서 친일의 보는 관점이 그러므로 정치적인 사안이 아니라 학술적 사안으로 이해하려는 태도였다고도 보여집니다. 그런데 이미 인쇄까지 마친 연구성과물에 대해서 박지만이 소송을 걸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어쩔수 없이 공개하고 정정당당하게 싸우지 않으면 안되겠지요. 여기서 지면 8년동안 고생한 모든 것을 발표조차 못하게 되는데 연구자들로써는 당연한 싸움이 아니겠습니다.
그러니 팀킬을 자행한 박지만 같은 불효자도 드물겠습니다. 사전에 수록된 인물이 많기에 이왕에 조갑제가 리포팅한 박정희의 혈서론쯤은 이미 알려진 사실아니냐고 흐지부지 넘어갈수도 있는 일인데 말이죠.
무명씨가 어떤 자료를 근거로 그런 주장을 했는지는 본인이 밝혀야겠지요.
물론 1939년 설립 논의가 1월과 2월에 빨리 본토에서 진행되었고 그 결과 3월에 시작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이 났을수도 있습니다.
뭘 보고 오해했는지는 무명씨가 밝히셔야할텐데, 과연 ^^
대체 30년전에 이미 단죄받아 죽은 박정희에게 무슨 개인적인 은혜가 그렇게 뼈에 사무치시는 것인지.
매우 이상한 정서입니다.
간만에 같은 도우를 만나서 반가왔습니다.
30년전에..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죠
이제 대한민국은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되었습니다.
덧글 내용 요약하면 : 사진 비교는 박민성의 촛불 개수 세어보기에 버금갈듯
저 사람도 그저 '사람'의 범주에서 보면 동정심도 조금 생깁니다.
네 감정상으로는 참 미운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미운 자라도 인격적 대우를 멈춰서는 안되는 이유는,
괴물을 잡자고 우리가 괴물이 될수는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