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습니다.

박정희는 혈서를 썼다

몇달전에, 박정희考...진충보국 혈서설 떡밥은 여전히 유효한가? 라는 글이 올라온적 있었다.

무명씨의 요지는 "박정희 나이로 충분히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혈서로 지원했다는 것은 거짓" 이라는 것. 특히 혈서론이 퍼지게 된 배경은 박정희의 지인이였던 유증선이 증언을 하고 이 증언을 조갑제가 내무덤에 침을 뱉어라에 인용하면서 퍼지게 된 것인데, 이에 대해 유증선이 소설을 쓰고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런데 최근 친일인명사전 발간의 건으로 박지만이 소송을 걸었고 이에 대해 민족문제 연구소가 사료 (1939년 3월 13일자 만주일보) 를 공개했다.  원문보기 >>>

공개된 사료에 따르면 무명씨의 주장과는 달리 혈서를 쓰고 나이를 조작하라고 조언한 유증선의 증언은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혈서(血書) 군관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넣은 서류로 송부되어 계원(係員)을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하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반드시 국군(만주국군-편집자 주)에 채용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중략)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 : 편집자 주)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만주신문』 1939.3.31. 7면)


이로써 우리가 알 수있는 역사적 진실은

1) 39년 당시 박정희는 분명히 혈서를 썼다. 만주신문은 수십년뒤 한국에서 친일문제가 불거질 거라는 예상 따위는 못했을테니, 당시의 친일풍조를 붐업하기 위하여 모집요강에도 못드는 고령임에도 혈서까지 쓰는 지원자가 있다는 훈훈한(?) 미담으로 보도한 것이다. 그러니 조작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
2) 그러나 나이 문제 때문에 군관이 되지 못했다.  또한 떨어진 이유를 설명하면서 군적이 있는자로 한정되어 있기에 라는 신문기사 내용은 당시 박정희도 사범대 졸은 곧 하사관 지위와 동등하다는 통념에 따라 나이가 안되면 자신이 하사관 군적이 있다고 어필할 목적으로 교련검정합격 서류를 낸것 같다. 하지만  무명씨의 주장과는 달리 당시 전문직 군인들에게 박정희의 어설픈 하사관 군적은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 또 한가지 박정희는 일계군관 모집 요강을 보고 했다고 하는데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으나, 당시 신경군관학교에서 '만주계 군관'과 '일계 군관'을 별도로 모집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또한 박정희가 애초 부터 반도출신자이나 충성심이 강하다고 판단된 만주군에 지망한 일계 군관의 시범 케이스로 입학했기에 졸업시에도 우수자로 선정되고 일본육사에 진학하도록 처음부터 관리된 것이 아닌가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고령에 군적도 없는 식민지 출신자라도 혈서같은 수단으로 충성심 보여주면 성공할수 있다는 제국주의 프로파간다의 완성)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박정희가 만주군 출신이므로, 일본군과는 무관하다는 옹호 주장도 굉장히 옹색해진다. 이하 만주국과 조국(일본)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내용으로 봐서 박정희의 뇌리에는 만주국 = 일본제국 동일체라는 인식이 확고했던 것으로 보인다.
3) 박정희가 혈서를 썼다는 사실은 만주일보에 보도되었다. 즉 만주의 일본인 오피니언 층들에게는 상당한 이슈가 되었다.
* 이후 박정희의 군관학교 입학에 간도특설대 출신의 동향 선배가  개입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반박정희 성향이 강한 중국쪽 사료는 무시하더라도 국내에서 박정희의 동년배 지인 (군인)들 중에서 박정희가 '간도특설대'나 '칠석부대' 소속이었다는 증언이 있는 것에 대해서도 세부적인 검토와 조사는 이루어져야  할것이다.
4) 다음해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 전해에 나이와 군적이 인정이 안되어서 떨어진 자가 다음 해에 특혜로 입학하게 된다면 그것은 혈서로 인한 인상(일제에 대한 충성맹세) 때문일 수 밖에 없다.

(만주신문 1939.3.31. 7면)

무명씨는 지난번 글에서 박정희 혈서론을 지지하는 네티즌들에 대해 "뇌의 촉수가 1볼트 정도의 용량을 가진 뭇 네티즌들이 감화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색이 무엇이던, 엄연한 사료에 대해 곡학아세하지 않는 것이 
역사를 논하는 자의 기본자세다.

자 이제 누구 뇌의 촉수가 1 볼트의 용량인지, 
무명씨가 자신의 명백한 잘못에 대해 스스로 사과할 수 있는 인격적인 도량이 있는 자인지
확인해 보기로 하자.

by 라이프펜 | 2009/11/05 15:08 | [:시사글:] | 트랙백(2) | 핑백(1) | 덧글(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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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날라리 무도인의 잡소리 at 2009/11/05 18:10

제목 : 범인에겐 침을, 바보에게 존경을, 천재에겐 감사를,..
박정희는 혈서를 썼다조갑제 씨가 쓴 글 중에 '범인에게 침일, 바보에게 존경을, 천재에겐 감사를'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이 글을 두고 진중권 씨는 엉큼한 조갑제 씨가 존경을 받고 싶은 모양이라고 비아냥댔는데 나는 오늘 정말 조갑제 씨를 존경하고 싶은 심정이다.애초에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 들어가려고 혈서를 썼다는 이야기는 반 박정희 진영에서 문제제기한 것이 아니었다. 솔직히 그런 일까지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걸 최초로 발굴해낸 사......more

Tracked from 무명씨네 랜덤 히스토리.. at 2009/11/06 01:17

제목 : 박정희考...박정희 혈서 증거자료라는 것을 보고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만주신문의 "血書, 軍官志願"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인용, 박정희의 혈서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떠들고 있다. 일제시대 어용신문들의 기사에 대해 이렇듯 전폭적인 신뢰를 보이면서 작두날을 타는 무당처럼 신명난 살풀이를 하고 있다. 그런 기준이라면 학도병 궐기를 촉구한 기사가 무려 3번이나 나간 여운형은 왜 친일인명사전에서 뺐는지 모를 일이다.일단 이 신문기사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29일 치안부 군정사 징모과로 조......more

Linked at milln의 연습장 : 박정희.. at 2009/11/05 15:41

... http://lifepen.egloos.com/4269871개인적으로 사실 여부가 궁금했던 문제인데 민족문제연구소에서 39년 만주신문에서 박정희의 혈서를 언급한 대목을 제시 했군요. 만주신문이 데이터베이스화 ... more

Commented by 12345 at 2009/11/05 15:37
일사부재의는 절대 아니라면서 네티즌들을 비웃다가, 헌재가 일사부재의 인정하니 여전히 네티즌들을 비웃는 무Q에게 너무 많은걸 바라시는거 같습니다~
Commented by 라이프펜 at 2009/11/05 15:57
그 양반 말마따나 "남의 얘기는 꼭 출처를 확인해서 근거를 만들지 않으면 언제고 같은 일이 또 발생" 하겠지요 ^^
Commented by 안셀 at 2009/11/05 16:42
그분이야 조금만 지나면 굳건히(?) 모른 척 다른 이슈 들고 올듯..
Commented by 미친과학자 at 2009/11/05 15:45
뇌신경에 1볼트의 전기가 흐르면 아마 뇌신경이 타버리....;;;;
Commented by 라이프펜 at 2009/11/05 15:58
아... 그분이 그래서... 어.... 그렇다면 납득이....
Commented by milln at 2009/11/05 15:54
혈서떡밥이 일단락 되겠군요. 궁금했었는데..
Commented by 라이프펜 at 2009/11/05 15:58
혈서떡밥을 이 세상에 퍼트린 사람이 조갑제였다는 것부터가 부정할수 없는 시련의 시작.... (응?)
Commented at 2009/11/05 16:2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라이프펜 at 2009/11/05 17:03
80년대만 해도 조갑제가 꽤 공부 열심히해서 기사 쓰는 기자였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곡학아세하기 시작하면서- 역사적 진실을 개인의 사상적 취향과 틀어맞추려고 하면서 저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합니다. 인간이니까요 저도 마찬가지구요. 하지만 자기 과오에 대해서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하는 자는 '성장'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Commented at 2009/11/05 16:3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라이프펜 at 2009/11/05 17:05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묘한 상황에서 터졌습니다. MB 정권입장에선 박근혜에게 기스를 낼 목적으로 이 카드를 묵인할 가능성도 높다고 봅니다. 그리고 아무리 자식이라는 특수관계라도 명백한 사실에 대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봐야, 지 손만 아프죠.
Commented by udis at 2009/11/05 16:30
아마도 내일 쯤이면 그분 블로그에 재테크 관련 글이 하나 오르지 않을까 싶네요. 당신의 가치는 얼마입니까, 뭐 이런 거. :-)
Commented by 라이프펜 at 2009/11/05 17:07
불쌍하지요. 정말 스스로의 가치가 뛰어나고 그래서 자기가치로 성공한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라면, 이런 식의 어리석은 짓 반복하지 않습니다. 그런 자기 자긍심이 부족하니까 자신의 작은 실수도 인정하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로 도망치는 것이지요.
Commented by asianote at 2009/11/05 18:17
솔직히 공부 많이 한 분이라 생각합니다. 저 같은 하수가 볼때는요.
Commented by 역사짱 at 2009/11/05 19:48
근데 왜 이제야 저걸 공개했는지.... 진작 공개하지...끌끌...
Commented by 라이프펜 at 2009/11/05 20:33
어차피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내용이 아니었을까 싶구요. 특별히 박정희만 꼭 짚어서 미리 발표한다는 것도 오히려 정치적으로 친일을 이용한다는 곡해를 살수도 있는 일일테니까요.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친일의 보는 관점이 그러므로 정치적인 사안이 아니라 학술적 사안으로 이해하려는 태도였다고도 보여집니다. 그런데 이미 인쇄까지 마친 연구성과물에 대해서 박지만이 소송을 걸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어쩔수 없이 공개하고 정정당당하게 싸우지 않으면 안되겠지요. 여기서 지면 8년동안 고생한 모든 것을 발표조차 못하게 되는데 연구자들로써는 당연한 싸움이 아니겠습니다.

그러니 팀킬을 자행한 박지만 같은 불효자도 드물겠습니다. 사전에 수록된 인물이 많기에 이왕에 조갑제가 리포팅한 박정희의 혈서론쯤은 이미 알려진 사실아니냐고 흐지부지 넘어갈수도 있는 일인데 말이죠.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11/05 20:15
한가지 궁금한 것은 일본 본토에서 1939년도에야 신경군관학교 설립이 논의되었다고 한 무명씨님의 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좀 의아합니다. 그 말대로라면 1938년 중반에 혈서를 보냈다던 것과 좀 배치되지 않겠습니까?
Commented by 라이프펜 at 2009/11/05 20:39

무명씨가 어떤 자료를 근거로 그런 주장을 했는지는 본인이 밝혀야겠지요.

물론 1939년 설립 논의가 1월과 2월에 빨리 본토에서 진행되었고 그 결과 3월에 시작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이 났을수도 있습니다.

뭘 보고 오해했는지는 무명씨가 밝히셔야할텐데, 과연 ^^
Commented by STX™ at 2009/11/05 21:02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친일 행각을 쉴드 쳐주기 위한 물타기를 거의 발악 수준으로 하는거 보면 뭔가 대단합니다....
Commented by 라이프펜 at 2009/11/05 22:00

대체 30년전에 이미 단죄받아 죽은 박정희에게 무슨 개인적인 은혜가 그렇게 뼈에 사무치시는 것인지.

매우 이상한 정서입니다.
Commented by 인생은아름다워 at 2009/11/05 22:09
무명은 진짜 드립좀 그만 했으면 좋겠네요
Commented by 라이프펜 at 2009/11/05 22:16
이명박이 대운하를 포기하지 않았듯이, 저분이 이런 명백한 잘못에도 불구하고 드립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Commented by 안드레아 at 2009/11/06 01:15
새로운 사실을 배웠습니다.
간만에 같은 도우를 만나서 반가왔습니다.

30년전에..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죠
이제 대한민국은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되었습니다.

Commented by 아쥬나이 at 2009/11/06 01:22
그냥 무명은 관심을 주지 말아야 되는 인종인거 같습니다.
Commented by 12345 at 2009/11/06 01:57
덧글 하나 남기니 곧바로 삭제 크리네영~
덧글 내용 요약하면 : 사진 비교는 박민성의 촛불 개수 세어보기에 버금갈듯
Commented by 라이프펜 at 2009/11/06 10:01
너무 심한 비판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
저 사람도 그저 '사람'의 범주에서 보면 동정심도 조금 생깁니다.
Commented at 2009/11/06 12:5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라이프펜 at 2009/11/06 12:56

네 감정상으로는 참 미운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미운 자라도 인격적 대우를 멈춰서는 안되는 이유는,
괴물을 잡자고 우리가 괴물이 될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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