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6일
박정희는 혈서를 썼다 2, 또는 무명씨의 자폭에 대해
박정희考...박정희 혈서 증거자료라는 것을 보고
자. 드디어 사료 좋아하는 무명씨가 자폭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무명씨의 논리에 따르면 만주신문이 박정희가 쓰지도 않은 혈서를 썼다고 조작했다는 것인데, 만주신문이 박정희가 무슨 대단한 인물이라고 없던 일을 조작까지 하겠는가. 당시 현실에 욱일승천하는 일제에 충성하겠다는 리얼 스토리가 차고도 넘쳤는데, 뭐하러 허구를 조작해내겠냐고.
전후관계를 파악하지 못하는 무명씨가 고민하는 문제의 정답은 이미 해당 신문에 설명되어 있다.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만주신문 1939.3.31. 7면)
이제 증언과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를 합리적으로 정렬해보자. 즉 편지를 두번째 썼다는 것은,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2번 지원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번 모두 지원편지에 혈서를 동봉했을 개연성이 아주 높다.
1. 1938년 5월 박정희는 유증선과 상의하다가 1기 군관학교 만주계 군관부문에 지원편지와 1차 혈서를 써서 지원한다. (유증선의 증언에 따른 조갑제의 리포트) 이때 지원한 것은 39년 1기 만주계 군관이다.
2. 1939년 2월 24일 : 만주군관학교측은 박정희를 쌩까고 떨어뜨려버린다. 그리고 이 사이에 40년도 2기 지원자격 정보가 반도의 박정희 까지 전해진다.( 박정희가 언급하는 2기부터 생긴 일계 군관 지원에 대한 내용)
3. 1939년 3월 29일 : 박정희는 작년에 떨어진 만주계 대신 2기 일계 군관 분야에 지원편지와 2차 혈서를 쓰고 또 지원한다. (만주신문의 '동군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번째' 라는 것은 이 2차 지원편지와 혈서를 뜻한다) 이때 박정희의 편지 내용을 보면, 이번 일계군관에 지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자신도 안다. 하지만 한번 죽어서 일제에 충성을 바치겠으니 무리가 있더라도 채용해달라고 한다. 특혜를 요구한 것이다. 나이는 안되도 하사관 군적이라도 인정해 40년 2기 일계 군관 응모에는 자격이 없느냐는 문의를 한 것이고 여기에 2차 혈서를 더해 자신의 인상 강화를 위한 사전정지 작업을 3월부터 한 것이다.
4. 1939년 3월 31일 : 당시 넘쳐나던 지원자들 중에서 두번이나 혈서를 써서 지원한 극렬분자는 매우 드물었을테니, 이 사실이 훈훈한 미담으로 간주되어 만주신문에 보도된다. 하지만 만주신문이 확인했듯이 기사가 나오는 시점에서는 박정희의 나이와 군적 모두 인정받지 못해서 대일본 제국에 죽음으로 충성하겠다는 박정희의 간청은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40년 2기생 모집을 하는 39년 응모에는 원칙상 박정희는 지원자격미달 - 해당사항 없음이 결정된 것이다. 하지만 박정희가 혈서를 쓰고 그 내용이 신문에 실렸다는 사실은 반도의 박정희 지인들도 알 정도가 된다 즉 혈서까지 쓴 충성심 강한 반도 출신이 떨어진 것으로 유명해졌다.그리고
5. 1940년 4월 4일 : 기적이 일어난다. 작년에 나이와 군적문제로 듣보잡 취급을 받던 박정희는 제2기로 입학하는 데 성공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유증선의 증언(주관적인 사료)과 만주신문의 보도 (객관적인 사료) 모두 정확히 일치한다. 기존에 알려진 박정희의 혈서내용(1차 혈서 : 진충보국 멸사봉공’(盡忠報國滅私奉公) 과 이번에 알려진 혈서내용 (2차 혈서 : 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이 다르다는 것도 혈서가 2개였다면 모두 설명된다.
따라서 무명씨의 혼란은 박정희의 두번의 지원을 오직 단 한번만으로 인식하고 있어서다. 무명씨가 39년 3월 31일 만주신문에 38년에 뽑지 않았던 <일계 군관>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는 이유로 이 기사가 조작이라고 하는데, 어이가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39년 3월 29일 박정희가 보내서 도착한 편지는 지난 38년(39년도 1기생)도 응모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이번 39년도에 진행하는 (40년 2기 입학 예정)의 일계 군관 응모에 대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인 해석이 된다.
무명씨의 주장대로라면 만주신문의 박정희 기사는 미담이 아니라 괴담이 된다. ^^ 박정희는 이미 작년에 끝난 응모에 작년에 있지도 않은 부문 (일계군관)에 올해 혈서를 써서 지원하는 놈 = 정신병자다. 이것은 미래의 한국 근대화의 대통령을 미리 모략하려는 만주신문 조작의도인가? ^^ 그러니 무명씨의 만주신문 조작론은 따르면 따를 수록 엄청난 의구심이 생긴다. 만주신문이 박정희가 뭐 그렇게 위대한 인물이라고, 보내지도 않은 혈서에 있지도 않은 작년도 응시요강(일계 군관)에 관한 내용까지 넣어서 기사를 조작한단 말인가. ^^
청년 박정희는 매우 치밀하고 교활한 인물인것 같다.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만주국에 대한 충성보다 일본에 대한 충성맹세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간파했고 다음해 지원할 때 공략 방식을 변경한것이다! ^^
덧,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무명씨는 좀 더 불쌍한 사람인것 같다. 공부를 하다보면 자신이 오랫동안 쌓아왔던 결과를 부정하는 일들이 생길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잠깐 자존심 상한다고 곡학아세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자신의 자존심이 자신의 학문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자백하는 처량한 짓에 불과하다.
여러번 말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나도 그렇다. 내가 믿거나 확신하는 것에 대해서도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오면 나도 실수한것이다. (내가 최근에 역사적 의견을 수정한 것은 정조에 대한 심환지 독살설에 대한 사료(정조와 심환지간의 어찰)가 발굴된것이 대표적이다. 나는 과거에는 이덕일의 주장에 동조하는 입장이었고, 새로 발굴된 사료에 대해 이덕일이 새로운 반론을 던졌지만 이젠 그 해석은 납득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다음이 가장 중요하다.
잘못에 대해 명백히 솔직히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긍정하는 것이다.
심지어 박정희 조차도 38년의 만주계 지원이라는 잘못을 반성하고, 39년에는 확실하게 입학될 수 있게 일계 지원이라는 참신한 선택으로 행동을 능동적으로 수정하지 않는가 (응?)
자신의 인격도 향상되고 학문에도 새로운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서 궁극적으로 학문이 더 두터워질수도 있다. 그러나 명백한 잘못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학문도 퇴보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학문을 이루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인 자신의 인격이 추하고 더러워진다.
무명씨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글 쓰며 한평생 공부하겠다는 모든 이들- 특히 나 자신의 경계로 이글을 삼고자 한다.
자. 드디어 사료 좋아하는 무명씨가 자폭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무명씨의 논리에 따르면 만주신문이 박정희가 쓰지도 않은 혈서를 썼다고 조작했다는 것인데, 만주신문이 박정희가 무슨 대단한 인물이라고 없던 일을 조작까지 하겠는가. 당시 현실에 욱일승천하는 일제에 충성하겠다는 리얼 스토리가 차고도 넘쳤는데, 뭐하러 허구를 조작해내겠냐고.
전후관계를 파악하지 못하는 무명씨가 고민하는 문제의 정답은 이미 해당 신문에 설명되어 있다.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만주신문 1939.3.31. 7면)
이제 증언과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를 합리적으로 정렬해보자. 즉 편지를 두번째 썼다는 것은,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2번 지원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번 모두 지원편지에 혈서를 동봉했을 개연성이 아주 높다.
1. 1938년 5월 박정희는 유증선과 상의하다가 1기 군관학교 만주계 군관부문에 지원편지와 1차 혈서를 써서 지원한다. (유증선의 증언에 따른 조갑제의 리포트) 이때 지원한 것은 39년 1기 만주계 군관이다.
2. 1939년 2월 24일 : 만주군관학교측은 박정희를 쌩까고 떨어뜨려버린다. 그리고 이 사이에 40년도 2기 지원자격 정보가 반도의 박정희 까지 전해진다.( 박정희가 언급하는 2기부터 생긴 일계 군관 지원에 대한 내용)
3. 1939년 3월 29일 : 박정희는 작년에 떨어진 만주계 대신 2기 일계 군관 분야에 지원편지와 2차 혈서를 쓰고 또 지원한다. (만주신문의 '동군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번째' 라는 것은 이 2차 지원편지와 혈서를 뜻한다) 이때 박정희의 편지 내용을 보면, 이번 일계군관에 지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자신도 안다. 하지만 한번 죽어서 일제에 충성을 바치겠으니 무리가 있더라도 채용해달라고 한다. 특혜를 요구한 것이다. 나이는 안되도 하사관 군적이라도 인정해 40년 2기 일계 군관 응모에는 자격이 없느냐는 문의를 한 것이고 여기에 2차 혈서를 더해 자신의 인상 강화를 위한 사전정지 작업을 3월부터 한 것이다.
4. 1939년 3월 31일 : 당시 넘쳐나던 지원자들 중에서 두번이나 혈서를 써서 지원한 극렬분자는 매우 드물었을테니, 이 사실이 훈훈한 미담으로 간주되어 만주신문에 보도된다. 하지만 만주신문이 확인했듯이 기사가 나오는 시점에서는 박정희의 나이와 군적 모두 인정받지 못해서 대일본 제국에 죽음으로 충성하겠다는 박정희의 간청은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40년 2기생 모집을 하는 39년 응모에는 원칙상 박정희는 지원자격미달 - 해당사항 없음이 결정된 것이다. 하지만 박정희가 혈서를 쓰고 그 내용이 신문에 실렸다는 사실은 반도의 박정희 지인들도 알 정도가 된다 즉 혈서까지 쓴 충성심 강한 반도 출신이 떨어진 것으로 유명해졌다.그리고
5. 1940년 4월 4일 : 기적이 일어난다. 작년에 나이와 군적문제로 듣보잡 취급을 받던 박정희는 제2기로 입학하는 데 성공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유증선의 증언(주관적인 사료)과 만주신문의 보도 (객관적인 사료) 모두 정확히 일치한다. 기존에 알려진 박정희의 혈서내용(1차 혈서 : 진충보국 멸사봉공’(盡忠報國滅私奉公) 과 이번에 알려진 혈서내용 (2차 혈서 : 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이 다르다는 것도 혈서가 2개였다면 모두 설명된다.
따라서 무명씨의 혼란은 박정희의 두번의 지원을 오직 단 한번만으로 인식하고 있어서다. 무명씨가 39년 3월 31일 만주신문에 38년에 뽑지 않았던 <일계 군관>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는 이유로 이 기사가 조작이라고 하는데, 어이가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39년 3월 29일 박정희가 보내서 도착한 편지는 지난 38년(39년도 1기생)도 응모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이번 39년도에 진행하는 (40년 2기 입학 예정)의 일계 군관 응모에 대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인 해석이 된다.
무명씨의 주장대로라면 만주신문의 박정희 기사는 미담이 아니라 괴담이 된다. ^^ 박정희는 이미 작년에 끝난 응모에 작년에 있지도 않은 부문 (일계군관)에 올해 혈서를 써서 지원하는 놈 = 정신병자다. 이것은 미래의 한국 근대화의 대통령을 미리 모략하려는 만주신문 조작의도인가? ^^ 그러니 무명씨의 만주신문 조작론은 따르면 따를 수록 엄청난 의구심이 생긴다. 만주신문이 박정희가 뭐 그렇게 위대한 인물이라고, 보내지도 않은 혈서에 있지도 않은 작년도 응시요강(일계 군관)에 관한 내용까지 넣어서 기사를 조작한단 말인가. ^^
청년 박정희는 매우 치밀하고 교활한 인물인것 같다.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만주국에 대한 충성보다 일본에 대한 충성맹세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간파했고 다음해 지원할 때 공략 방식을 변경한것이다! ^^
덧,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무명씨는 좀 더 불쌍한 사람인것 같다. 공부를 하다보면 자신이 오랫동안 쌓아왔던 결과를 부정하는 일들이 생길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잠깐 자존심 상한다고 곡학아세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자신의 자존심이 자신의 학문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자백하는 처량한 짓에 불과하다.
여러번 말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나도 그렇다. 내가 믿거나 확신하는 것에 대해서도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오면 나도 실수한것이다. (내가 최근에 역사적 의견을 수정한 것은 정조에 대한 심환지 독살설에 대한 사료(정조와 심환지간의 어찰)가 발굴된것이 대표적이다. 나는 과거에는 이덕일의 주장에 동조하는 입장이었고, 새로 발굴된 사료에 대해 이덕일이 새로운 반론을 던졌지만 이젠 그 해석은 납득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다음이 가장 중요하다.
잘못에 대해 명백히 솔직히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긍정하는 것이다.
심지어 박정희 조차도 38년의 만주계 지원이라는 잘못을 반성하고, 39년에는 확실하게 입학될 수 있게 일계 지원이라는 참신한 선택으로 행동을 능동적으로 수정하지 않는가 (응?)
자신의 인격도 향상되고 학문에도 새로운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서 궁극적으로 학문이 더 두터워질수도 있다. 그러나 명백한 잘못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학문도 퇴보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학문을 이루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인 자신의 인격이 추하고 더러워진다.
무명씨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글 쓰며 한평생 공부하겠다는 모든 이들- 특히 나 자신의 경계로 이글을 삼고자 한다.
# by | 2009/11/06 09:16 | [:시사글:] | 트랙백(1) | 핑백(1) | 덧글(6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노란싸스를 입은 초인'의 '혈서논란'에 대한 잡담
박정희는 혈서를 썼다 2, 또는 무명씨의 자폭에 대해아,이번에는 '시각적 마타질'은 잠시 접어두고,그냥 잡다하게 이야기나 할려고 합니다.특히나 '친일 논란'이 많다는 '노란 싸쓰를 입은 경제신화에 빛나는 초인(?)'떡밥은 저도 낚일 만 하니 말이죠.이번에 '나온'저 것이야 예전부터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고,이런 친일부역인물에 대한 '역사 청산'적 시각으로 보면,이런 논란은 어떻게 보면 '더 이상 논할 필요 없이 확실하게 정리'되어야 ......more
... </a>Commented by udisat 2009/11/06 10:05 <a title="답글" onclick="replyComment('replyform4270386','4270386','12996892',4,'',''); return false;" href="http://lifepen.egloos.com/4270386#"></a>에효...그 블로그 가봤는데 포스팅도 그렇고 댓글들도 그렇고 참 추하더군요.<a title="#" href="http:/ ... more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그냥 "조국 근대화의 높은 공을 저 정도의 친일행위 따위로 가릴수는 없다능..!" 정도의 변호가 가장 적절할거 같은데요 ㅋㅋㅋㅋ
당시 조선 문경에 박정희 라는 동명이인 훈도가 있었고, 그 동명이인이 혈서를 쓴거라는 사료가 나타나는 겁니다. (응?)
이 문제에 대한 극우진영의 답글 대상자는 당사자 무명씨로 한정하고자 합니다.
안 그러면 토론이 산으로 가니까요.
당사자도 아닌 몽몽이님이 나타나면 대개 토론이 그렇게 되더군요. 흠
더구나 여기는 제 블로그니까 내 생각대로 입니다. ^^
불가피하게 몽몽이님은 차단하겠습니다.
? 토론 당사자로 호명한 '무명씨' 아니면 끼지마. 님도 차단하겠음.
제 의견입니다. 읽어보고 한 말씀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 일제하 식민지에서의 한국인의 군적 분류 방식
저는 매우 원칙이 없는 그러나 지배계층이었던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원칙이 없어도 무방한 상태였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장창국처럼 일본 육사 출신도 있고, 박정희처럼 만주국 군관학교에 입학했다가 일본육사에 편입하는 사례도 있었으니까.
왜냐하면 이는 지배자 일본제국 입장에서 어차피 내선일체가 완성된 상태에서 식민지의 인적자원들은 필요에 따라 어떻게 일본제국 (+만주국)에 복무하던 상관이 없다. 현지입대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러니 특별히 조선반도의 조선인은 일본계, 만주의 조선인은 만주계로 구분해서 관리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봅니다. 어차피 일본제국군(만주군 포함)에 입대하면 그만이니까요.
즉 생각하시는 대로 박정희는 만주군에 복무했으니, 일제와 무관한 학위였다가 아니라 당대의 사람들은 만주국과 일본을 분리해서 사고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박정희의 혈서동봉 편지에도 "국군(만주국)에도 충성하고 일본에 충성하는 것은 같다고 동일시 있음"은 분명합니다.
2. 사범학교 출신자의 "예비역 군적"은 현실적으로 인정받지 못한것이 아닌가?
님께서는 박정희가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일본 육군 예비역 소위의 지위를 유지한 채 만주군에 복무한 것을 친일로 단죄한다면, 현실적으로 사범학교 교원이 하사관 지위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당시 교원들도 친일로 간주되어야 하느냐고 하십니다.
우선 논리의 비약이 있습니다.
1) 사범학교 교원은 말씀하신대로 '하사관의 지위'를 사회적으로 인정받았고, 박정희는 정식교육을 받은 위관급 (장교) 이었습니다.
2) 2차 대전의 복잡한 외교적 사례를 들자면 직접 참전을 선언하지 않는 대신에 자국의 훈련된 정규직 군인을 예비역으로 편제하고 예비역 상태에서 해당 전선에 해당 정부의 명령이 없는데도 소신으로 지원한 의용군으로 위장하여 참전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습니다. 단적인 예로 들자면, 공식적인 대일전쟁 이전에 미군의 예비역 상태에서 중국편에서 일본과 싸운 미국의 플라잉 타이거 같은 부대 입니다. 그러니까 예비역이었으니 본적인 일본군와 무관하다고 주장하시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3) 이 부분이 중요한데, 박정희의 사례에서 보면 일반인과 친일당국은 교원 = 하사관 이라는 논리로 전쟁 분위기를 민간사회에 고양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실제로 군부가 학교선생이 = 하사관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매우 의문입니다. 박정희가 가장 대표적인데 그가 교련검정합격증명서를 동봉한 것은 나이가 안되면 하사관 자격이라도 인정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군적이 없다고 판단'해서 떨어졌다고 기사는 나옵니다.
그러므로 저는 박정희의 일본 예비역 장교직 보유가 친일이라면 교원이 하사관이니까 교원까지 단죄하자는 소리는 말씀은 매우 과잉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3. 박정희는 '특혜입학' 이었다.
무명씨가 이야기 하는 당시 9월에 발표되었다는 공식모집요강은 연령대가 일치하는 (16~19세) 시기의 '정식 입교생'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요즘 대학입시로 말하자면 정시모집이지요.
그런데 박정희는 '하사관 군적'을 내세워 3월에 지원편지를 먼저 냈습니다. 요새 말하면 수시지원 이겠지요. ^^ 당시 군적이 있는 자 (현역 하사관이 지원하는 경우)는 이런 비공식적인 수시모집을 받고 이번에 응모해도 좋다는 사전 내락을 받는 것이 더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조직에 소속되어 있는 자 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미 기존 조직에 다니고 있는 자(하사관이던, 학교선생이던)가 새로운 조직(군관학교)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기존 조직의 양해가 있어야 하고, 특히 폐쇄적인 군내에서는 정규모집 전에 조직간에 '이놈은 보낼수 있다. 없다.'는 사전 협의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조직이 일하는 방식입니다. 특히 일본인들 일하는 것을 보면 이런 사전협의 경향이 매우 강하죠.
따라서 저는 박정희가 3월에 지원한 것에 대해 별로 의구심이 들지 않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특혜를 요구하기에 더욱 그렇지요. 특혜를 요구하는 자가 과연 '정시모집'에 응하면 강한 인상을 줄수 있을까요? 제 생각엔 그 무렵엔 규정에 맞는 연령대의 지원자들이 수천명이나 있는데 이놈(박정희)만 골라 특혜를 인정해 주면 욕먹었을 겁니다.
박정희의 교묘함이랄까. 교활함이라는 것은.
2월에 1기가 입학하고 내년 2기를 준비하면서, 어떻게 2기를 뽑을까 당국이 고민하는 시기 (3월)에 미리 지원편지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런 지원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습니다 (수시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미담으로 신문기사에 남아버리는 비극이 결국 생기면서...... ^^
4. 1939년 5월 유증선의 증언은 현재로써는 큰 오해는 아닌것 같습니다.
다만 편지의 전문이 확인되어야 제 생각의 일부가 맞는지 틀리는지를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1기생 탈락에 대한 취소 요청인지, 2기생 응시에 대한 선지원인지 현재 보도된 내용만으로는 파악이 불가능하군요.
그리고 한 가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저는 박정희의 만주군 복무가 친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만주군 복무가 이미 친일의 범주에 속한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으나 다만 "일본군 소속"이라는 표현이 무리가 있다고 여기는 것 뿐입니다. 박정희가 일본군이 아니라 만주군에만 속한다고 해도 만주군 복무 역시 분명히 친일행위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39년 3월이면 이미 1기생이 뽑혀서 교육을 시작하고 있는데 이제와서 1기에 대한 취소를 취하해 달라고 보낸 것이라면 아미 당시 만구국 치안부 군정사 징모과에서는 '이건 참 미친놈'이다 했을것 같아요. ^^ 따라서 2기에 선지원하는 것이 그나마 박정희를 지독한 야심은 있으나 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인간으로 여겨지게 합니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글을 쓰는 거야 어쩔수 없지요.
글쟁이의 가장 큰 욕망이니.
그러나 자기 글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아주 기본적인 품성은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은 마침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일하는 날이라 글쓰고 답글드리지,
다른때면 댓글엔 답글도 못할정도로 바쁘게 먹고 사니까요. ^^
그리고 다른 댓글에도 썼습니다만. 너무 인간적으로는 미워하지 마세요.
괴물 잡자고 우리가 괴물이 될수는 없습니다.
허긴,그렇게 '식민지 조국'을 생각했다면,그것도 '자원입대'를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창씨개명까지 하면서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임정','무장항일독립단체','광복군'같은 곳에라도 가야 했을텐데 말이죠.설령 만주군관학교나 일본 육사에 들어갔다고 해도(군사 기술이나 지식 습득상 들어갔다는 명분 하에)'튀어서'그쪽으로 빠졌다면 모를까.
일제가 강성하면 일제에
해방이후 공산주의 세가 강성하면 공산주의에
6.25이후 반공주의가 강성하면 반공주의에
민족문화연구소 기사를 보면 박정희는 1차탈락 후에 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이라 쓴 혈서를 동봉한 편지를 보내 1939년 다시 응모한걸로 나타나네요. 제 생각에는 유증선의 증언에 오류가 있는거 같아요. 1939년에 쓴 혈서를 1938년에 쓴 것으로 혼동한 것이지요. 혈서는 한번만 보낸 것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물론 재차 군관학교 입학시켜달라고 졸라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요.
1) 유증선이 39년 3월의 일을 38년 5월로 오해를 했다 : 가능합니다. 내무덤의 침을 뱉어라 작업이 이미 상당히 시간이 흐른뒤에 이루어진 것이여서, 시점의 오해는 있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혈서를 썼다는 내용은 이번 사료 공개로 유증선의 증언이 정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요.
2) 38년 3월의 편지는 1기 모집에 대한 재응모였는가, 39년 2기 모집에 대한 선지원이었는가 가 핵심인데요. 당시 정황으로 봐서 39년 2월에 이미 1기 입과생 선발이 완료되었다고 공고가 난 상태에서 1기의 취소를 위해 '나 혈서 썼으니까 군관시켜주세요'라고 졸라대는 편지를 보냈거라면 (1기의 다른 불합격생에 대한 형평성 문제도) 박정희가 조직의 기본도 모르는 무댓뽀가 되어버립니다. 38년에 일계 군관을 선발하지 않았고, 39년부터 본격적인 일계군관이 선발된 만큼, 박정희는 39년의 응모를 목적으로 하고 재지원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우선 39년에 혈서를 썼다는 것은 숨길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고.
38년에도 응모를 했다는 것도 숨길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고 (이번이 두번째 지원했다는 사실)
유증선이 증언하는 38년 5월이면 10월경의 38회 1기 응모의 가능성에 대해서 박정희 본인과 주변에서는 많은 고민의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을테니, 두번의 혈서 지원도 저는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38년 응모에도 나이 때문에 안된다는 것을 박정희는 이미 알고 있었을테니까요.
말씀하신대로 진정한 우익이라면, 이정도로 쪽팔리는 박정희 정도는 자기네들 계보에서 무시하고 자기실력을 보여줘도 될텐데요.
이 사안을 정치적으로 푼다고 해도 저런 반응은 매우 어리석어요.
박근혜가 그래 우리 부친이 그런 과오가 있다는 걸 인정한다. 매우 잘못되었고 나는 그렇지 않겠다. 아버지가 잘못한것은 반성하고 잘한것은 승계해서 위대한 지도자가 되겠다. (응?)
이런 포지션으로 과거사를 포옹(?) 가면 박근혜가 절대 불리할 게 없는 데 말이죠.
그리고 1944년도에 현재의 북한군의 전신의 부대원들을 처단하였다는게 사실이 되어있는데.
누가 친일파가 아니라고 부정하는가 봅니다.
만주국은 괴뢰국이라서 일본의 영토가 맞는데 부정하는 인간들이 많더군요.
만주군과 일본군의 차이는 만주국 쪽에 괴팍하다는것 밖에 차이가 없음.
결국 친일한것은 가려지지 않습니다.
과거는 과거고 자식에게는 물려주면 안되는거죠.
부의 대물림 현상이 친일파 후손들에서 많이 발생.
그러게요 저들의 주장대로 일본과 만주국을 따로 떼어서 생각한다면,
2차대전 당시 프랑스의 비시정권이나 이탈리아 살로 공화국처럼 나치의 괴뢰정부하에서 일어난 만행들은 나찌의 만행
이 아니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하는 겁니다.
더구나 아무리 블로그에서 자위해봐야 이제 박정희가 혈서와 낯부끄러운 친일 맹세문을 쓰고 입교했다는 사실은 숨길수가 없게 되었는데도 저러고들 있으니... 쯧쯧
이 부분은 제가 몰랐던 부분이여서 추가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모든' 군관학교 출신들이 다 자동으로 임관 1년후 중위진급이 되었습니까? 그랬다면 이 부분의 견해는 수정하겠습니다. 사실 박정희가 과연 간도특설대나 칠석부대에 근무했는지는 아직 확신이 제가 없습니다.
참, 그리고 칠석부대가 아니고 철석(鐵石)부대입니다. 제가 알기로 박정희는 간도특설대는 아니었지만 철석부대 소속이 된 것은 맞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저도 잘 모르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해방 직전의 박정희 행적에 대해선 계속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꾸벅
님도 차단
내가 쓴 본글과 다른 분께 설명한 예시댓글을 혼동해서 지금 어쩔줄 몰라하시는 듯 한데요. <39년 응시에서 부터 일계 군관을 따로 뽑았다>는 내용이 창작이라면, 그 창작을 가장 먼저 이글루스에 퍼트린 이가 무명씨라는 점 부터 확인하시고 따지시길. ^^
그리고 39년 10월의 정규 모집 이외에 사범대를 졸업한 자신을 <하사관 군적자> 라고 생각했던 박정희는 (이건 무명씨도 동의하는 바고) 정규연령대 16세 ~ 19세 사이의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 정규모집에는 또 붙을 자신이 없으니 (38년 10월에 떨어졌으니까!) 39년도 초에 미리 자신의 충성심을 강조한 혈서와 <하사관> 군적을 강조하여 평가해 달라고 1939년 3월에 지원 입대 편지를 썼다는 소리예요.
이건 개연성이 높은 것이 군대라는 조직, 회사라는 조직을 다녀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조직의 행동 로직) 이죠. 즉 당시 일제군부대에서 만주군 군관을 지망하는 하사관을 군관으로 임용되기 위해서는 10월의 정규 응시 이전에 자신의 부대장과 만주군 징모과와 반드시 사전 협의를 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조직간에 협의가 된 하사관이 (사전내정이 이미 끝났지만) 10월 정규모집에 요식적으로 응모했을 거라는 거죠.
왜? 당시 어떤 미친 일본 하사관이 될지도 안될지도 모르고 10월 때가 되어서야 나 군관학교 입학하니까, 소속부대 이탈해서 시험치러가겠습니다. 했겠냐구요. ^^ 군조직에서 미아가 되고 싶지 않은 바에야.
따라서 무명씨가 그렇게 주장하는 박정희의 하사관 자격이 사실이라면-
하사관 및 준 하사관(교원)의 만주군관학교 지원에는 특정한 응모기간이 따로 없어서
박정희가 정식 공모기간이 10월이 아닌 3월에 하사관 자격을 내세워 지원편지를 보낸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거죠.
군대나 조직(회사생활)을 좀 해보세요.
회사에서 정식 채용공고 내기 전에 알음알음 인맥으로 사전에 들어오는 이력서들이 얼마나 많은지 ^^
3월 31일의 만주신문이 조작이라고 함! 하하 그럼 당연히 피차 논의불가.
Mediocris 의 댓글
만주신문의 혈서설 기사를 사실(fact)로 인정하기에는 미심쩍음을 넘어 조작의 냄새가 짙습니다. 기사라는 사실이 역사의 과핵(core)이 되기에는 해석이라는 과육(pulp)에서 너무 구린내가 나기 때문입니다. 첫째, 디지털 자료도 아닌 종이 자료인 만주신문이 박정희 혈서설이 제기된 몇십년 동안 나타나지 않다가 느닷없이 등장한 점입니다. 둘째, 민족문제연구소는 신문 사본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 그 신문이 현재 어디에 어떤 형태로 보관되어 있는지 밝혀야 합니다. 셋째, 1939년 3월 31일자 달랑 한 장만 사본으로 보여줄 것이 아니라 다른 일자의 신문과 같이 철해진 상태인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최소한의 사료 조작의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무명님의 신문 기사 일자가 합격자 발표 이후라는 문제 제기는 조작의 단서로 아주 중요합니다. 9월에 발표되는, 그래서 5월에는 있지도 않은 모집요강을 5월에 받들어 읽고 혈서를 썼다는 식으로 중요한 일자를 착각했다는 점에서 이미 유증선의 증언의 신뢰성은 없어졌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점은 만주신문 1939년 3월 31일자의 기사에서는 두번째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1937년 4월 10일 문경공립심상소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자 마자 1차 지원 편지를 보냈다는 이야기입니다만, 박정희 전기의 어디에서도 그런 점을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1)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2)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후략)
1. 박정희는 '군관학교'에 지원을 한 것이 아니라 '군관'에 지원을 한 것.
2. 고로 군관에 특채해 달라는 요청이었으므로 군관학교와는 별 무관.
3. 결국은 군관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한 후 군관이 됨.
정시니 수시니 입시요강이니 하는 건 한참 동떨어진 곳에서 같이 삽푸는 것.
당사자 아니면 끼지를 마세요. 차단했습니다.
님의 주장대로라면 박정희는 정말 미친놈인데- 안 그래요? 대관절 얼마나 만만해 보이는 당나라 군대에 어떤 민간인이 나 교원자격이 있으니까 (사회 통념상) 난 분명히 군적이 하사관이다. 그러니 민간인인 날 군관 시켜달라고 편지를 써서 보낸단 말인까.
ㅋㅋ 요즘 대한민국 육사도 이렇게 지원하면 받아줄까? 아니면 미친놈 소리를 들을까? 더구나 사범학교 졸업순위가 꼴등에서 왔다갔다 하던 지원자라면 ^^ 군관에 지원했다해도 군사교육이 반드시 필수였을 것이고
그러니 박정희 지원자에게는 군관지원은 곧 군관학교 지원과 같은 이야기. 그러니 기사에 친절하게 나오잖아.
1) 군관으로 바로 임용하기에 :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즉 무명씨가 그동안 박정희 혈서론의 증거라며 떠들었던 사범학교 출신자의 하사관 기본 군적 인정은 당시 만주군에 듣보잡이냐를 받은 것이고)
2) 그럼 군관학교에 집어넣으려고 했더니 :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당시에는 정중히 거절한다고 결정되었잖아?
그랬던 인물이 다음해에 군관학교에 입학을 했네? 대체 무슨 힘으로? ^^ 혹시 혈서?
오라는 무명씨는 안오고 별 잡스러운 분들이 날아드시니 참 황송합니다. 이제부터 당사자인 무명씨 이외에 댁네 진영의 논리 댓글/트랙백은 경고없이 삭제 하오니 그런줄 아십시요.
감사합니다.
무슨 헛소리를 그리도 심하게 하시는지 유증선의 1938년 5월은 신경군관학교가 없었는데 어디에 보낼려고
혈서를 쓰나요? 1938년 10월 응시자 발표가 1939년 2월24일 입학일 4월 입니다 박정희는 1939년 10월에
응시 1940년 4월 입학입니다 그러니 민족연구소가 주장하는 혈서는 전혀 이치에 맞지 않지요 1기생
합격자 발표한지 일주일만인3 /31일에 특혜를 바라고 혈서를 씃다면 1기생 입학인 4눨에 입학을 해야
특혜를 받은게 입증이 되지만
박정희는 39년 10월에 시험쳐서 40년 4월에 입학 했습니다 고로 님의 주장은 말이 안되는 궤변이지요
특혜 혈서를 쓸려면 2기 시험일 전일 9월달이나 10월달에 쓰서 보내야 말이되지 2기 시험 7개월전에
특혜부탁하는것은 전혀 말이 안된다는것을 모르시나요
기사내용도 박정희 서부 보통학교라고 말하지만 진짜는 심상 소학교 훈도 였습니다 , 사이비들이 조작한
소설을 근거로 1992년판 일본육해군총합사전에 박정희 이름을 오카모도 미노루 라고 잘못 올라와 있는
전례도 있으니까 이번 출처불명한 사본도 신뢰가 안가기는 마찬가지죠 , 해방이전의 일본군 문서
어디에도 오카모도 미노루란 이름이 없습니다 죄다 다까끼 마사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945년 해방이전에 오카모도 미노루란 이름이 기록되어있는 박정희 문서를 가져오면 님 말을 신뢰
할수 있지만 못가져 오면 님은 음해할 목적으로 조작된 기록에 장단 맞추는 꼭둑각시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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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한 정일권 만주군 소위(당시 계급)가 모교인 용정 광명중학교에서 졸업예정자인 후배 학생들을 앞에 놓고 진학지도를 하면서 만주군 지원을 강력하게 권유했다는 기록이 장창국 장군의 책에 나옵니다.
/ 나야쓰
ㅋㅋ 제 3자인 나야쓰님이 설명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분들은 제가 하는 말은 전혀 믿고 있지를 않아서... ^^
혈서 건도 친일 경력을 더 돋보이게 하는거니 문제가 되는 것일뿐
혈서를 썼던 말던 어차피 일본군 장교질이라는 본질은 그대로지.
도데체 뭘 믿고 그렇게 당당하게 반론을 펼치는거여? 이 똥자루같은 무Q찌그래기들아
너그들 말이 골백번 맞아서 다카키 마사오가 혈서 안썼다고 쳐보자.
혈서 안쓰고 일본군 장교로 들어가 천황 개로 일한거는 친일 아니냐? ㅋ
다카키 개사오는 개인적으로 봤을때 역겨운 인간쓰레기일뿐이다.
자칭 보수우익을 참칭하는 너희들의 기준에서 봤을때는 더욱 그렇다.
도데체 친일에다가 좌빨 2관왕 다카키 마사오를 옹호하는 너그들은 보수우익이 아니라 걍 수꼴이지.
그나저나 인신공격이라.. (웃음)
자 보세요. ^^
여러분들은 지금 과거 토론 또는 키배에 서로에게 쌓였던 감정을 이번 계기를 통해서 반추하고 계신데요. 그러실 필요없답니다. ^^
저를 포함해서 이글루스에 서로를 대단히 싫어하는 사람들이 진영을 이루며 공존하고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바고, 옛날에 저사람이 댓글로 나한테 어떻게 상처줬어. 그러니까 너희가 더 나빠 따위 저는 사실 큰 관심이 없어요. ^^
이 토론을 하면서 제가 원하는 토론상대가 아니면 지운다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분들이 이슈를 물타기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제가 과잉된 행동을 한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고, 그 부분은 책임이 있다면 제가 다 져야할 부분이니까. 여기서 이렇게 과거의 일로 다투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
그러니 좀 릴렉스해지세요. 이 블로그에서 뭐라고 강조 한들, 무명씨의 블로그에서 뭐라고 변명한들
이 세상의 대세-
'박정희는 혈서쓰고 군대갔다'는 이제 역사적 진실이 되어버렸으니까요. ^^
다들 황금같은 휴일인데 이미 결론난 문제에 너무 신경들 쓰지 마시자고요. ^^
식민빠 선생님 말씀이 과연 옳구나.
글쎄요. 승리라-
지금 누가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 이해를 못하고 계십니다.
조갑제와 무명씨가 싸우고 있습니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질까요? 모르겠습니다. 전.
가만... 이것이 염화시중의 눈웃음인가요. ^^